검색결과
' 김경숙'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71건
-
문서사료 124건
-
- 고 김경숙열사 추모식 및 민주화를 위한 노동자 전진대회
-
등록번호 : 00055587
날짜 : 1987.08.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YH노조의 김경숙 열사에 대한 설명과 추모글 포함
-
- 고김경숙양추도식
-
등록번호 : 00837002
날짜 : 1979.08.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노조의 고 김경숙 열사의 추도식 추도위원 명단. 고 김경숙양의 추도회 식순, 고...
-
- 생활의 발자취-김경숙
-
등록번호 : 00837005
날짜 : 197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고 김경숙열사가 자신이 다니던 동일교회 아가페선교회에서 작성했던 가족과 개인에...
-
-
사진사료 18건
-
- YH사건으로 사망한 고 김경숙의 추도식 모습
-
등록번호 : 00710435
날짜 : 1979.08.2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고 김경숙양 추도식을 가졌다. 김영삼 총재는 추도사에서 "750만 근로자의 생존과...
-
- 신민당에서 거행된 YH사건으로 사망한 고 김경숙의 추도식
-
등록번호 : 00710447
날짜 : 1979.08.2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고 김경숙양 추도식을 가졌다. 김영삼 총재는 추도사에서 '750만 근로자의 생존과...
-
- [조국의 노동자 김경숙 열사묘]
-
등록번호 : 00430208
날짜 : 1998.02.2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박영희
요약설명 :
-
-
박물사료 3건
-
사료 컬렉션 1건
-
사료 콘텐츠 8건
-
- 세상이 다 알았던 죽음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죽음 - 김경숙 일기
-
요약설명 : 8월 11일. 새벽 2시. 서울시 마포구 신민당사 뒷마당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된 김경숙의 죽음은 세상이 다 알았지만 동시에 아무도 몰랐던 죽음이었다. 21살 그 여성노동자가 어떤 과정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경찰은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 목격자가 없다고 말했다. 자살이라고 했다. 동맥을 그은 흔적이 손목에 남아있었으니 자살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겨우 고등학생이던 남동생과 광주에서 행상으로 살아가던 어머니가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당국의 서슬에 놀라 저들이 말하는 '빨갱이 딸과 누나'에 대해 제대로 따져 물을 수...
-
- YH사건 희생자, 김경숙 이야기
-
요약설명 : YH사건 희생자 김경숙 이야기를 카드 콘텐츠로 구성하였습니다.
-
- 사료관 사료 기술과 디지털화 기준
-
요약설명 : 사료를 수집하였다. 수집한 사료는 YH무역 김경숙 열사의 노동자 시절 일기, 5.18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한 정태원(전 로이터, UPI기자) 사진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한국문제일본기독교긴급회의와 1970년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도왔던 미국·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의 모임인 월요모임 관련 사료까지 민주화운동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들로 그 가치가 크다. 사료는 사료 정보를 정확하게 기술해야 이용자가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료관은 이용자 편의성 및 사료 보존성 강화를 위해 사료 기술과 디지털화 기준을 정하고 있다. 사료 기술(description) 사료관은 국제 보존...
-
-
구술 아카이브 2건
-
일지사료 15건
-
- YH무역 여공노조원들, 경찰 1,000여명 의해 강제해산, 김경숙 사망
-
일자 : 1979.8.11
분류 : 민주화운동 > 야당
요약설명 : 8개 경찰서로 분산 연행되었다. YH노조 간부 김경숙은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에 왼팔 동맥이 끊기고 쓰려져 있는 채로 발견되어 인근 녹십자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졌다. 경찰은 정문을 부수고 침입하여 신민당원들이 의자·책상 등으로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밀치고 최루탄을 발사하며 2층으로 난입하여 회의실에 있던 김영삼 총재 등 신민당원 50여명을 구타하였으며 신분을 밝히는 취재 기자들을 폭행하고 카메라 등의 기물을 파손했다. 그 결과 신민당 당직자 및 당원 30여명, 취재기자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서울시경의 ‘101호 작전’은 23분 만에 종결되었다. 경찰은 종결 직후 시내 각처에서 청소부 30여명과 인근 건재상 종업원들을...
-
- 경찰, YH사건 경과 및 입장 발표
-
일자 : 1979.8.11
분류 : 정치·경제·국제관계 > 여성
요약설명 : 특수교육을 받은 노조간부들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망한 노조 간부 김경숙의 사인을 밝혔다. 경찰은 사망한 김경숙이 연행과정의 소란을 틈타 사이다병으로 자신의 왼쪽 팔 동맥을 2센티미터 가량 스스로 끊어 중상을 입고 12미터 아래로 뛰어내렸으며 당사 후편 지하실 입구에 방치돼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인근 녹십자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고 발표했다. 『경향신문』 1979.8.13.;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민주화운동관련 사건·단체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조사 연구보고서 – 1970년대 사건편』, 2003, 812쪽;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Ⅳ), 1987, 1592~1593쪽.
-
- 신민당 ‘김경숙사인조사단’, 경찰의 입장에 반박 입장 표명
-
일자 : 1979.8.12
분류 : 정치·경제·국제관계 > 여성
요약설명 : 2시 이후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김경숙 유족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 및 경찰조사 등을 종합하면 오전 1시 30분경 추락사로 추정하는 경찰의 입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 의원은 당일 농성 현장에는 외부의 위협에 대비하여 일정 인원이 불침번을 섰으며 신민당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침번 ‘보호번’도 배정되어 있었으며 경찰이 침입하기 30분 전에 여공 간부인 김경숙의 추락사가 일어났다면 큰 소란이 발생하였을 것인데 그런 사태는 전혀 없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신민당은 시체해부사진을 근거로 상처의 상태나 부위로 보아 단순한 추락사로 보기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으며, 외부 타격에 의해 생길...
-